제13차 한인세계선교사대회>둘째날>[포럼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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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5] 개요: 이슬람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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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ilitator • 조용성 /터어키, 이주희 /키르키즈스탄, 이득수 /방글라데시, 어성호 /인도네시아

 


 

Time

제목

발제/응답자

2:00-2:50 pm

[발제] 서구 기독교의 이동과 이슬람 선교 (중동)

조용성 /터어키

2:50-3:00 pm

[응답] 서구 기독교의 이동과 이슬람 선교 (중동)

정형남

3:00-3:40 pm

[발제] 키르기즈 선교사례 (실크로드)

이주희

3:40-3:50 pm

[응답] 키르기즈 선교사례 (실크로드)

 

4:00-4:45 pm

[발제] 상황화 (서남아시아)

이득수

4:45-4:55 pm

[응답] 상황화 (서남아시아)

 

4:55-5:00 pm

정리 및 폐회

 

 


[발제] 서구 기독교의 이동과 이슬람 선교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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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조용성 /터어키

 

총신대학교 대학원 졸업(M.Div, Th.M). 1987년 GMS 선교사 파송(22년 사역). 터키 국립 마르마라(Marmara)대학교 대학원 졸업(MA, Ph.D 수료, 역사학 전공). 전, GMS 훈련원장 역임. 현, 실크로드 GMS 지역책임자. 현, 안식년 중 (Esrkine Seminary, Visiting Fellow)


들어가는 말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류는 문명사적 전환기를 경험하고 있다. 교회와 선교도 동일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세계교회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출발한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변화의 폭이 과거에 경험한 것과는 현격하게 크다. 크게 두 가지 변화가 교회와 선교에서 나타났다. 첫째는 남반부로 이동하는 기독교이다. 이 의미는 더 이상 기독교가 서구 기독교가 아니다. 20세기말부터 2/3세계권에서 교회가 성장하고 서구 인구감소와 고령화 현상이 대표적인 예이다. 둘째는 북반구 서구교회의 정체성(Identify) 혼돈이다. 서구교회의 정체성 혼란은 심각하다. 북반구의 서구 교회의 문제는 기독교 인구 감소가 단순히 교회의 감소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체의 정체성 감소가 되었다. 결국 서구 기독교가 남반부로 이동과 함께 정체성을 잃어버린 핵심은 바로 “ 교회의 세속화-Secularism” 이다.

지금 기독교의 과제는 다가올 그리스도 왕국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시점에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시카고 한인 선교사회 포럼에서 이슬람 선교의 전략적인 접근은 화두가 될 만하다. 본 발제자는 두 가지 큰 틀을 가지고 접근했다. 첫째는 다가올 세계 속에서의 교회(남반부)와 선교 정체성이다. 둘째는 이슬람 선교의  전략적 접근이다.

I. 다가올 세계 속에서의 교회와 선교 정체성

1. 남반부로 이동하는 기독교

더 이상 기독교가 서구의 기독교가 아니다. 수년 전부터 여러 학자들에 의해 언급되었던 개념이지만2) 최근 필립 젠킨스(Philip Jankins)는 그의 저서 “다가올 기독교 왕국”(The Next Christendom)3)에서 중요성을 시사해 주었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서구의 종교였고, 기독교 왕국(Christendom)이라고 하면 서구교회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20세기말부터 2/3세계권에서 교회가 성장하고 서구의 인구감소와 고령화 현상을 보이면서 서구 기독교 인구가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기독교 인구의 반 이상이 남반구(2/3세계,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 살고 있다.

1900년에는 북반구의 인구가 남반구의 2.5배였으나 2050년이 되면 정확히 반대가 된다.4) 달리 강조한다면, 이제까지  전형적인 기독교하면  백인, 중산층을  지칭했다. 그러나 오늘날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을 그려본다면 아프리카 나이지리아교회, 아시아의 중국 가정교회, 남미의 브라질 슬럼가 교회를 생각하게 된다.  아시아와 남미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이 남반구에 근거를 둔 새로운 기독교왕국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기독교가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변화와 정체성을 의미 한다.

세계는 공산주의 이념 붕괴 이후 국제 질서 재개편이 되었다. 기독교 선교도 국제 질서 변화와 함께 재개편 되었다.  전통적으로 서구선교가 주는 선교 개념에서 변화 했다. 북반구 서구 기독교가 남반구 기독교로 이동하게 되었다. 남반부 사회는  내재된 문화에 스며들어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예를 들면, 남반구 기독교인들은 신앙이나 도덕적 가르침에 있어서 매우 보수적이다. 남반구 교회들은 깊은 개인적 신앙과 공동체의 정통성, 청교도주의를 설교한다. 남반부 교회를 서구 교회가 보기는 단순한 은사주의, 환상과 예언 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논리적인 사고를 가진 서구교회에서 본다면 예언, 치유, 귀신을 내어 쫓는 일, 꿈과 환상이 서구교회 시각에서는 맞지 않다. 신비주의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실례는 영국의 성공회 전 세계 주교회의에서  수가 많아진 아프리카의 주교들 때문에 동성애를 인정하는 문제가 부결되었다.

북반부 서구교회는 남반부의 기독교가 보수적인 신앙 때문에 부정적인 면으로 보일 수도 있다. 보수적 신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근본주의적 성향으로 나타나게 되고 그 결과 근본주의적 입장은 종교간 화해와 공존 보다는 대립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늘날 이슬람근본주의자들과 기독교근본주의자들의 충돌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다.

2. 북반구 서구교회의 정체성 혼돈

오늘날 서구교회는 정체성 혼란에 빠졌다. 북반구의 서구 교회의 문제는 인구의 감소가 단순히 교회의 감소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체의 정체성 감소를 가져왔다. 서구 기독교가 영향력을 잃어버린 핵심은 바로 “세속화-Secularism”5)의 결과이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한 사람이 네슬리 뉴비긴(Nesslie Newbigin)7)이다. 그는 영국인으로 인도로 선교사로 갔던 사람이다. 그는 인도에 선교사로 가서 평생 그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한 번도 영국을 방문하지 않았고 은퇴하고서야 영국으로 돌아왔다.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가 영국을 떠날 때 만해도 영국 사회는 기독교가  중심에 서있었고 기독교 가치가 사회의 가치 중심에 있었다.  그가 영국을 떠난 사이에 영국사회는 더 이상 기독교가 사회 가치의 핵심 역할을 하지 못하고 주변문화로 밀려나 버린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교회의 세속화 결과였다. 영국인들의 삶과 사고의 중심에 있었던 기독교가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껍데기만 남았다. 세속화가 다원주의로 이어지며 그 결과 기독교 가치도 상대화되는 문화 환경으로 바뀌게 되었다. 영국의 기독교는 더 이상 종교의 핵심도 아니고 사람들의 가치를 주도하지도 못하게 되었다.

한 예로, 영국의 레이체스터에 가면 1792년 개신교선교운동을 출발 시킨 윌리엄 캐리가 목회했던 교회이다. 최근 이 교회가 폐쇄되어 불교 사원으로 바꿨고 강대상이 있던 바로 그 위치에 불상이 놓여 있다. 그 지역 주위에 힌두교 사원, 이슬람 사원, 각종 종교 사원이 교회와 나란히 한 도시의 중심부에 서로 마주보고 있어도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는다. 즉 기독교는 더 이상 서구의 종교도 아니며 서구 사회의 가치와 문화를 지배하고 있지도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서구 교회의 화두가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서구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선교의 꽃을 피우고 그 정점에 올라와 있는 한국교회도 곧 경험하게 될지 모른다.

최근 한국 이슬람 15만 명 돌파 기념으로 이슬람 대학과 사립중고등학교 설립해 이슬람 선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8) 막대한 후원을 오일국가들로 부터 지원받고 있다. 한국 이슬람은 올 해 이슬람  포교8) 전략 행사가 조국에 한창이다.  실제적 집안이야기 한다면 한국 은 기독교 안전지역이 아니라는 말이다. 집안 단속을 철저히 하지 않으면 다음세대를 예측할 수 없다. 이슬람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3. 전기독교왕국시대, 기독교왕국시대, 후기기독교왕국시대

서구에서 기독교의 확장 과정을 보면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기 전 단계, 전기독교왕국시대(Pre-Christendom)라고 한다. 그 후 콘스탄틴 대제의 기독교 공인이후부터 20세기까지 지속된 기독교왕국 시대(Christendom)라고 한다. 오늘날은 후기 기독교왕국시대(post-Christendom) 시대로 구별한다. 그 과정에서 교회는 여러 가지 변화와 특징을 가지게 되었다. 전기독교왕국시대에서 기독교왕국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왔다. 즉 로마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자청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 핍박가운데서도 복음전도가 급속도록 진행되었는가?  알렌 크레이더(Alan Kreider)는 그 이유를 전기독교왕국시대의 기독교의 특징은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독특성(distinctive)때문이다.9)라고 말한다. 즉 당시 교회가 핍박 가운데 있었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세상에서 볼 수 없는 독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핍박을 받고 있지만 어느 누구보다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가난했지만 서로 나누어 쓰는 방법을 통해 어느 누구들 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지만 정부에 정확히 세금 내는 일을 거부하지 않았다. 원형경기장에서 사자 밥이 되어 죽어갔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평화가 넘쳤고,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위치에 있었지만 영원한 처소를 소망하며 나그네로 지내는 것을 오히려 특권으로 생각했다. 그들의 독특성이 있었다.  비록 세속에 물들었던 사람들의 눈에도 기독교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히11:35-42)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교회는 점차 커지게 되고 드디어 교회가 세상의 중심이 되는 기독교왕국시대가 열리기 된 것이다. 문제는 기독교 왕국시대에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교회에 들어오면서 교회는 독특성을 잃어 버렸고 교회가 주는 기득권(incentive) 때문에 오게 되었다. 교회가 사회의 중심이 되고 권력과 지배력을 발휘하게 되자 사람들을 교회에 들어옴으로서 유익을 얻게 되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모든 삶이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교회의 구성원이 되면 그 유익과 기득권을 얻을 수 있었다. 서구의 기독교왕국은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구사회에서 기독교왕국은 그 껍데기만 남은 후기기독교왕국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교회에서 주는 유익 이상의 유익을 세상에서 얻을 수 있고, 교회가 주장하는 절대적 가치는 상대화되었고 그 결과 교회가 말하는 가치에 통제를 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결국 교회는 사회의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복음의 영향력은 그 힘을 잃게 되고 전도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게 되었다. 여기에 오늘의 서구교회의 몰락의 원인이 여기에 있다.10)

불과 수십 년 전만해도 기독교 국가였던 영국이 더 이상 기독교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나라로 바뀐 것을 목격한 레슬리 뉴비긴은 영국사회의 기독교 회복을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의 결과가 여러 저서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핵심은 오늘날 세속적 다원주의시대 속에서 복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전달되어야하는가? 복음이 다원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복음전도(선교)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복음이 세속문화를 뛰어넘는 능력임을 보여주지 않는 한 이 세상은 복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최근 뉴비긴의 생각을 오늘의 서구 교회에 적용하고 그 대안을 만드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이 복음과 문화 네트워크(Gospel and Our Culture Network)이다.12) 이 운동의 핵심 단어는 ‘미션어리 처치’(Missional Church)이다. 번역한다면 ‘선교 적 교회론’이다. 이 말은 단지 현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교하는 교회, 해외선교에 참여하는 교회 정도의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정체성(Identity)에 대한 것이다. 즉 오늘날 세상에서 주변문화로 전략해 버린 교회가 그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가져야 할 위상은 “”미셔 널”(Missional)이라는 것이다. 미션(Mission)이란 말은 원래 보내심을 받은 자란 의미로 신약성경에 사도(apostle)와도 동일한 의미이다. 이것은 초대교회 때 교회의 위상, 즉 나그네로서 보내심을 받은 자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초대 교회 때 기독교가 사회의 중심 세력이 아니었고 아무런 사회적 권력과 위상을 가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속 사회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공동체(Community)로 다가갔던 것은 그 공동체가 가지고 있었던 보내심을 가진 나그네(Pilgrim)로서의 정체성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세속 사회 속에서 교회가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독특성 있는 공동체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비록 소수집단이었고 나그네였지만 천국에 대한 소망 때문에 세상에 억매이지 않고 세상의 영향력에 대해 자유로우며 그 내면에는 큰 평화와 기쁨이 있었다. 세상의 권력과는 전혀 다른 영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나그네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현재의 위치를 떠날 수 있는 이러한 모습들이었다. 서양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저녁에 텐트 말뚝이 깊이 박으면 내일 아침 뽑기가 힘들다.” 세상에 너무 깊이 뿌리를 내리면 천국에 대한 소망과 나그네 인생에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4. 목회자와 선교사의 정체성 변화

한국교회는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의 모습이 변화해야 한다. 교회 역사 속에서 목회자의 이미지 변화해 왔다. 초대교회에서는 지도자를 사도(apostle)라고 불렀다. 그들은 새롭게 초대교회를 만드는 과정에서 선지자의 역할을 했다.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교회를 만들어 갔다. 기독교왕국시대, 중세에 들어서면 목회자를 사제(priest)라고 불렀다. 이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예배를 인도하고 교회의 권세를 보여주는 자, 즉 권세자의 이미지였다. 종교개혁시대에 들어서면서 등장한 이미지는 교육자(pedagogue), 혹은 교사(teacher)로서 성경의 교리를 가리치고 설명하는 자로서의 이미지였다. 그 후 계몽주의시대에 들어서면서 목회자의 이미지는 전문가(professional)로 바꿨다. 이러한 이미지는 오늘날까지 전달되고 있는데, 즉 설교전문가, 상당전문가, 구제전문가, 등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 목회자들은 전문적인 기술을 갖추도록 요구되고 있다. 교회에서는 각종 전문가들을 전임사역자로 임명해서 목표를 세우고 교회를 운영(management)해 감으로서 세상 사람에게 비춰지는 목회자 상은 경영인 혹은 성공한 CEO 으로 변했다.

과연 이런 목회자 상과 역할이 미래교회에도 적용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성경은 세상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나그네로 본다. 아무것도 없는 나그네가 아니라 영원한 소망과 진정한 평화 , 고정된 가치를 가진 자들이다.  오늘 지금 내가 있는 위치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영원한 소망과 가치를 알리고 그대로 살기 위해 떠나는 삶, 나그네의 삶, 순례자의 삶, 보내심을 받는 삶(Missional‘ life)을 사는 자들이다. 교회와 목회자가 이 정체성을 회복할 때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주목받을 수 있다는 역설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5. 한국교회의 미래.

오늘의 한국교회는 짧은 시간 동안에 전기독교왕국시대(pre-Christendom)를 통과하고 기독교왕국시대에 와 있다. 한국사회에서 교회는 그 수와 영향력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 힘도 있고 세상에 대한 영향력도 있다. 문제는 과연 이러한 시간이 얼마나 더 지속될 것인가?  오늘 날 교계신문에 실리는 한국교회와 관련된 뉴스들은 참담한 일들이 많다. 교회 안에서의 목회자들 간의 권력다툼은 더욱 심각해지고, 교단의 문제들은 대부분 권력과 이권과 관련된 사건들이며, 교회가 세상의 이데올로기 논쟁의 한 복판에 서서 소리 지르고 있다.

 교회가 기득권(incentive)의 장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교회는 망하게 된 것을 서구교회가 보여 준 교훈이다.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나그네와 순례자로서의 정체성, 떠나는 교회(missional Church)의 정체성을 가지고 온 세상 가운데 복음의 확산과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주기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심각히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II.  이슬람 선교의  전략적 접근(12)

지난여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은 어쩌면 예상된 일이었다. 지지난 해 논란이 되었던 대규모 평화대행진 무산 사건이 전혀 무관하지 않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한국교회의 선교 활동에 대해 여러 차례 경고를 보냈다. 결국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과 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선교 단체 간에 양극화 현상은  인질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을  높게 해 주었다. 안타까운 것은 건강한 선교활동을 하던  교회들과 선교사들에게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태로 인한 불신자들의 교회에 대한 비판이 산을 넘었다. 한편, 교회에선  위험지역에 세밀한 준비와 위기상황에 대한 대비 없이 가는 것에 대한 반성, 일부 그릇된 동기와 무분별한 선교 팀 파견에 대한 자성이 있었다.  아프칸 사태를 계기로 한국교회의 이슬람  선교의 전략적 접근이 논의 되어야 한다. 이슬람 선교의 전략적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 이런 포럼을 통해 실제적인 방향이 잡혀야 한다.  여기 3가지로 전략적 접근을 생각한다.

1.이슬람 선교의 동기(Motivation) 변화 .

이슬람 선교는 선교 근본 동기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슬람 선교는 선교 동기가 외부자 중심이 아닌 내부자 중심의 눈높이로 나가야 한다. 무슬림들에게 복음 전파를 단순히 “천국과 지옥” 개념으로 단순화해선 안 된다. 무슬림들에게  복음전파를 단순히 “ 천국과 지옥” 개념으로 일방통행 접근한다면 무의미한 접근이다. 무슬림들도 천국과 지옥개념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물론 기독교가 말한 천국과 지옥 개념이 다르지만 말이다. 선교의 동기가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무슬림을 향해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천국과 지옥” 개념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해야 한다. 물론 성경은 명백히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은 형벌을 말함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의 동기가 단순히 지옥 형벌을 피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만 이해 될 때 선교가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이거나 배타적이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목적은 단순히 인간 구원목적을 넘어선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세상을  하나님의 원래 목적대로 회복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래 목적이다. 따라서 이슬람 선교의 목적이 협의적(愜意的)으로 한 개인을 지옥 형벌에서부터 구출을 넘어서서 광의적(廣意的)으로 복음 전파의 결과로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서 온 세상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는 동기(Motivation)로 전환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바른 선교의 동기 변화는 이슬람 사회 안에서 복음의 유일성을 들어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준다.

2. 이슬람 선교의 문화(Culture) 이해

문화란 특정집단이 공유하는 사고 및 행동양식이다. 문화이해에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은 동질집단 사람들이 타 문화에 대해 배타성을 가져 선 안 된다. 분명한 사실은 문화에는 하부문화(subculture)와 반문화(counterculture)가 없다. 그런 맥락에서 문화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한다면 믿음, 가치기준, 관습, 제도들이 있다. 이러한 믿음, 가치기준, 관습을 드러내는 제도가 통합된 체제를 가진 문화라고 말 할 수 있다. 여기 4가지 체제를 가진 문화를 생각해 본다.
-믿음: 신(新)에 대해, 실재에 대해, 궁극적 의미에 대해 말한다.
-가치 기준: 옳고, 선하고, 아름답고 규범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한다.
-관습: 처신하기, 관계 맺기, 말하기, 기도하기, 옷 입기, 일하기, 놀기, 장사하기, 농사하기, 먹기 등을 의미한다.
-제도: 정부, 법원, 사원/교회, 가족, 학교, 병원, 공장, 상점, 조합, 동아리 등을 의미한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선교사가 효과적인 타 문화권 사역을 위해 필수 3가지가 요구된다. 첫째는 언어 습득이다. 둘째는 문화이다. 셋째는 행위 전달이다. 이 3가지 문화의 기능은 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키고, 정체성과 존엄성, 안정감, 영속성을 부여한다.

마지막으로 문화의 속성을 말한다면 문화는 습득된다. 유전적이지 생래적인 것이 아니다. 동적(dynamic)이고, 끊임없이,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적응적이다. 문화는 특정 상황에 순기능적으로 작용하고 통합적(integrated)이다. 이런 문화속성의 바른 이해를 위해 총체적인(holistic) 접근을 요한다.

이런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선교사가 현지에서 일할 때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도 무슬림들에게 조심해야 할 점은 자기문화 중심적 사고(Egocentrism)의 위험이다.

선교사가 성경적 절대성과 문화적 상대주의를 혼돈해선 안 된다. 다시 말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메시지의 규범적 성격과 초문화적 원리들을 실 상황에 적용해 문화적 전이(cultural transposition)를 이해해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결국 복음전달자(선교사)에게 필요한 문화적 감수성은 포장된 복음으로부터 복음 자체를 분리해 낼 수 있는 능력과 탈문화 능력이 요구된다. 전달자인 선교사는 피전달자의 문화 및 사고방식 이해와 그들의 “눈높이”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슬람 선교에 있어서 문화이해는 선교의 첫 단추이다.

3. 이슬람 선교의 태도(Attitude) 변화.

주님이 보여주신 선교의 태도는 성육신이시다. 주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요1:1)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성육신 선교를 실천해야 한다. 선교사의 역할 모범(바울의 자세: 빌 3:4-9; 고전 9:19-23.)이 있어야 한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17:18) 바울 사도는 선교의 핵심가치를 빌 2장에서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는 하나님과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을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제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2:6-7)” 바울은 비움의 선교를 했다. 그리스도의 비우심(kenosis- 사상)은 희생, 신분, 특권의 포기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섬김: 인간과 동화(identification- 참고: 히 2:14-18, 4:15, 5:8)는 인간과 동화 되셨음을 말한다. 바로 인자가 이 땅에 온 목적이었다. 하나님 나라와 구원을 이 땅에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포기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신 예수님의 삶이  선교에 참여하는 선교사의 태도가 되어야 된다. 선교하는데 있어서 포기와 희생은 정해진 일이다. 이러한 선교를 위한 포기와 희생은 선교의 역사를 통해서 계속해서 진행되어 왔다. 결국 선교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것은  순교 역사이다. 선교는 가서 우리가 가진 것을 자랑하고 뽐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자신을 드리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이슬람 선교 전략이 선교사의 태도 변화에서 출발해야 함을 작년 한 해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실물 교육으로 보여 주셨다.  터키 순교사건과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은 한국교회에 주는 메시지가 고난과 순교에 대한 각성일지도 모른다.13) 순교와 고난을 통해서 성장한 한국교회가 이제는 커졌다고 자만해지고 스스로 만족해하는 위치에  있어선 안 된다. 이슬람 선교에 있어서 선교사의 태도 변화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주님이 인간의 눈높이로 오셔서 낮아지시고 섬기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이슬람이 철옹성처럼 보일 지라도 겸손히 주님의 심장과 태도로 이들을 접근하면 무슬림들도 맘 문을 연다. 교리적인 논쟁은 싸움을 유발하지만 사랑의 태도에는 맘 문을 연다.14)

나가는 말

중동의 이슬람 선교의 최초의 순교자 레이몬드 롤(Raymond Roll) 선교사의 기도가 생각이 난다. “ 오주여! 이 거룩한 땅을 정복하실 이는 오직 당신밖에 없으시며 또 당신의 제자들이 이 일을 성취해 가기 위해선 사랑과 기도와 눈물과 자신의 온 생명을 바쳐 감당하는 길밖에는 결코 다른 길이 없다고 믿나이다.”

이런 선교의 심정을 가지고 이슬람 지역 선교를 한다면 주님이 이슬람 땅을 정복하실 것이고 회복시킬 것이다. 주님의 제자로서 할 일이 있다면 사랑과 기도와 눈물로 자신의 온 생명을 바쳐 감당한다면 주님이 문을 여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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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데이빗 보쉬(David Bosch,(김병길,장훈택 역) “변화하는 선교”(Transforming Mission),CLC,1997
조동진(David J. Cho, Ph.D),“기독교 선교 2000년 패러다임의 변천사와 한국 교회 선교운동의 회고와 전망 (The History of Paradigm Shift of Christian Mission 2000 Years and Look Back and outlook on Missionary Movements of the Korean Church), “ 2006년(부산 GMS 포럼 발표한 원고)
조용성저, 발로 쓴 선교이야기, 예영커뮤니케이션, 2008년
한철호,다가오는 그리스도 왕국과 단기선교, 기독신문
Alan Kerider “Beyond Bosch: The Early Church and the Christendom Shift” p59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Vol 29, No 2 April 2005
Berna Turam, Between Islam and the State, Stanford University,2007
Bob Buford, Halftime, Zondervan,1994
Darrel Guder , “Missional Church”, 1998,  Eerdmans. www.gocn.org
Niyazi Berkes, The Development of Secularism in Turkey, New York: Routledge, 1998
Philip Zankins, “The Next Christendom”(The coming of Global Church),  Oxford University,2002

1) 총신대학교 대학원 졸업(M.Div Th.M), 터키(GMS) 선교사 21년 사역, 현재, 안식년 중 Erskine seminary, Visiting fellow. cyseong@erskine.edu
2) 데이빗 보쉬(David Bosch)는 “변화하는 선교”(Transforming Mission)에서 세계선교와 변화된 패러다임에 대해서 언급했고, 앤드류 월스(Andrew Walls) 등도 오래전부터 2/3세계교회의 등장에 대해서 언급했다.
3) Philip Jankins, “The Next Christendom”(The coming of Global Church), 2002. Oxford University, p 2.
4) 상게서, p 3. “ The era of Western Christianity has passed within our lifetimes, and the day of Southern Christianity is dawning.”
6) Ibid, p.2
5) Niyazi Berkes, The Development of Secularism in Turkey, New York: Routledge, 1998, p5.
  * 세속주의와 국가(Secularism and State)에 내용은 필자가 미국 사우스케롤나이나 Erskine seminary에서 한 학기 텀 페이퍼를 제출한 일부이다.
Let’s start with a definition of Secularism. With numerous different ideas, Minion Smart shows us two main streams of religious approach and political dimension. This research is mostly focused on the later, “political side of secularism”
Secularism as a political ideology has been a growing issue in all Islamic society. It touches a core idea of social influence of the religion. It appears in various forms in different ages and social settings through history. In his famous book, “Formation of the Secular: Christianity, Islam, Modernity,” Talal Asad mentioned, “It is not a simple separation between religion and state.” We can easily find those examples in the medieval churches and even Islamic countries. Secularism is of Western origin which could be traced to European countries and their policies trying to separate religious privileges from centralized government system especially in 19th century.
Through the middle ages, churches had distinguished governmental rules and trial outside of church influence, Laicism, from church laws. It added sectarian connotation of “saeculum” and legal distinction of “laicism.” In political sense, Secularism came from all kinds of dynamic social relation between church and government.
Secularism has played significant roles in controversial era between the middle Ages and Modern Society. It contains various meanings in church, state, and social nuances. Asad analyzed the origin in “independent political ethics” apart from the universal church order6) during the time of Religious War.
As time passed by, it had been widely applied to all kinds of governmental pressure toward churches. Horace Kallen cynically explains these trends “Freedom from Religion” not “Freedom of Religion”
Application of the policy was deeply related with governmental authority. Modern states tried to find it through the relationship with church. Traditionally, they showed that their political authority stemmed from the Catholic Church, so the church has strong roles in their policy. However, in new era, they tried to seek their authority from the people, so they had to take over previous roles of church through the concept of “nationalism”
7) 이러한 관점을 다룬 대표적인 그의 저서는 “다원주의사회에서의 복음”(Th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요-복음과 수구문화“(Foolishness to the Greek: The Gospel and Western Culture) IVP
7) 한국에는 이슬람 성원의 통계를 보면 2005년 말 현재 국내외 무슬림 15만 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하며 이슬람권에서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아 온 한국 무슬림 박사들이 23명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8) 공식적으로 한국 이슬람은 1955년 6,25사변이 일어 난 후 터키 군이 유엔의 일원으로 참전하며 한남동에 이슬람사원을 세운 것이 한국 이슬람 포교 원년(元年)이다.
9) Alan Kerider “Beyond Bosch: The Early Church and the Christendom Shift” p59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Vol 29, No 2 April 2005
10) 조  동  진(David J. Cho, Ph.D)기독교 선교 2000년 패러다임의 변천사와 한국 교회 선교운동의 회고와 전망 (The History of Paradigm Shift of Christian Mission 2000 Years and Look Back and outlook on Missionary Movements of the Korean Church), GMS 선교대회 발표한 원고이다.
* 21세기 비기독교 국가의 선교의 새 세력이 선교를 주도하는 시대의 패러다임: The Paradigm of      New Mission Forces from Non-Christendom (AD 2000 - )
    a. 비서구세계 기독교 인구가 서구세계 기독교 인구보다 3배나 많아지면서 기독교가 서구 종교가 아닌 세계 종교로서의 기독교로 변한 시대의 선교
    b.1995년부터 비서구세계 선교사의 수가 서구 교사의 수를 능가하기 시작하면서서구 주도의 선교가 비 서구 선교 세력 주도 선교의 시대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11) Darrel Guder , “Missional Church”, 1998,  Eerdmans. www.gocn.org 참고. 뉴비긴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들어내기 위한 운동으로 세속주의 사회 속에서의 교회의 정체성과 사역 방안 등을 제시하는 운동이다. 이들의 운동을 소개하는 대표적인 저서로는 선교 적 교회론 “Missional Church”,이다.
12) 한철호(선교한국 대표), “ 이슬람 선교”글을 사전 허락을 받고 발췌 인용했음을 밝힌다.
13) “순교자 유가족 후원에 붙여(터사모)” 한국선교사들이 조국교회에게 보낸 편지이다. 2007년 4월 18 일(수) 13시경 순교의 피로 얼룩졌다. 터키 동남부 소도시 말라티야 기독교 출판사에 총기를 소지한 젊은이 5명이 기습했다. 이슬람 원리주자의 사주를 받았다. 독일인 선교사 1명과 현지 기독교인 2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이슬람 학생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는 19세,20세 전후의 대학 재수생들이 수요일 아침 10시경 기독교서점을 침입했다. 자기 민족을 기독교화 시킨다는  이유로 손발을 묶고 3시간여 칼로 고문했다. 선교사와 현지인 3명을 차례로 칼로 목 베임을 당했다.
     매스컴은 이 사건을 특종으로 다루었다. 살해된 사건 현장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처참한 시신을  옮기는 모습은 보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한인 사역자들은 비상대책 회의를 했다. 사건 전후를 파악했다. 한국 교회에게 기도를 요청했다. 지방에 있는 사역자들의 신원을 파악했다. 사건이 밝혀지기 까지 여행을 금지하도록 했다. 장례식에 참석했다. 유족을 위해 기도를 했다. 조용히 기도시간과 금식 기도 릴레이를 했다. 이 땅에 순교 피가 헛되지 않길 기도를 모았다.
피로 얼룩진 사건이 지난 지 20여일 되었다. 독일 선교사 아내 수산나는 세 자녀와 함께 아직도 말라티야에 살고 있다. 현지인 네자트 형제 아내는 이스탄불 근교 이즈밋 언니가 집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우르 형제와 약혼한 자매는 씨씨씨 사역에 합류하도록 했다.   
“ 저들을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저들이 한 것이 무엇인지 진실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남편을 죽인 무슬림 청년들을 향해 독일 선교사 아내 수산 나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사건은 터키 수도 앙카라로부터 동남부로 약 500 Km 떨어진 도시 말라티야 도심 3층 기독교 출판사에서 이루어졌다. 오후 1시경 현지인 우르형제 약혼자가 출판사를 방문했다. 문이 잠겨 있고 이상한 느낌이 들어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의 출동으로 4명의 범행자가 현장에서 체포했다. 한 명은  달아나기 위해 3 층에서 뛰어내리다 혼수상태로 병원에 우송되었다.
독일출신의 모 국제 선교기관의 틸만(Tilmann Geske) 선교사는 1961년생 47살이다. 1998년 터키로 들어와 9년여 간 터키 동남부 쿠르드인 지역인 말라트야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현장을 목격한 증언에 의하면 시신은 고문흔적이 있었다. 3시간여 심한 고문 후 목이 무참하게 잘린 채 발견되었다. 독일 선교사 부인 수산 나는 미살(13)과  미리암(8) 아들 누카스(11)와 함께 현지 민영 A-TV와의 인터뷰했다.
“ 저들을 용서합니다. 왜냐하면 저들이 한 것이 무엇인지 진실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9년 반 동안  터키 말라티야에 살고 있습니다. 사실은 평범한 삶을 살려고 이 나라에 왔습니다. 터키인들이 독일에 와서 무슬림으로서 사는 것처럼 우리도 터키에서 기독교인으로서 살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정말 진심으로 믿습니다. 저의 남편은 헛되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하였습니다. 함께 죽은 터키인들의 피도 헛되게 흘려지지 않았습니다. 진정으로 터키와 말라티야를 위하여 새로운 시작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 그리고 그들이 알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말씀하실것입니다, 그들에게!
저는 남편이 말라티야에 묻히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가족으로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곳에 보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내 옆에 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관습은 그렇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무덤에 다녀오곤 할 것입니다. 어린 딸들은 꽃을 (아빠 무덤) 놓아두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게 돌보기를 원할 것입니다”  
“ 나는 무슬림으로 태어났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죽을 것입니다.”
이 말은 현장에서 살해된 현지인 네자티 형제가 평소에 한 말이다. 현대 터키 선교역사에 무슬림에서 기독교 개종한 첫 순교자가 네자티 아이든과 우르 육셀 형제가 되었다. 두 젊은이들은 장엄하게 죽었다, 복음을 부끄러워치 않았다. 김선일 사건과 격이 다르다. 터키 땅에 거룩한 순교 피를 흘렸다. 선교사와 형제들 시신에는 심한 고문의 흔적과 코뼈가 부러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고문을 당한 후 참수 되어 진 것으로 보인다. 살해자들이 증거를 남기지 않아서 어떤 고문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단지 법정 증언에 의하면 이슬람을 강요하고 기독교를 부인할 것을 종용했다고 한다고 한다. 기독교 신앙을 조롱하는 고문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거룩한 순교자들의 남은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다. 남편을 떠나보낸 두 아내들의 무너져 내려가는 가슴을 붙들어 주어야 한다.  아내들이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게 하신 성령님께 감사를 드린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조금도 흩뜨림 없는 언행으로 위로와 소망으로 이 땅에 복음을 전한 것에 감사를 한다. 장례식장에서의 아름다운 간증은 세계 그리스도인들에 큰 기쁨과 확신을 주었다. 터키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보였다.  복음을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순결하고 고귀한 신앙은 터키 선교역사에 길이길이 남아 생명으로 나타날 것이다.
“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계6:9-10)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7:9-19)”    
순교자의 피를 신원하는 날과 후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주님을 맞이하는 그 날이 바울의 고향 소아시아에 다시 회복되길 기도한다. 무지와 음흉한 거짓으로 가득한 이 땅을 증오하고 저주하는 자들이 아니라, 악을 선으로 이기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속히 이루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조국교회는 일사각오 순교 신앙으로 점철된 교회이다. 순교의 토양위에 성장한 교회이다. 같은 마음으로 아파하고 순교의 피로 얼룩진 소아시아 땅 회복을 기도를 요청한다.
지난 5월 11일 터키 한인 사역자 협의회(KLAC)는 현지교회와 외국 사역자들과 함께 순교자 유가족 돕기 운동에 나섰다. 일차적으로 독일 선교사 틸만 선교사 가족은 독일 교회와 해외 국제 선교 기관을 통하여 모금 운동을 하고 있다. 현지인 두 형제인데 우르 형제는 결혼하지 않아서 무슬림 가정을 어떻게 지혜롭게 도와야 할지  기도 중이다. 문제는 네자티 형제 가정이다. 아내는 언니가 독일 선교사와 결혼하여 이스탄불 근교 이즈밋에서 교회 개척 사역을 하고 있다. 당장 말라티야에서 갈 곳이 없기에 언니 집에 있다. 자녀 어린 자녀들이 있다. 현실적으로 직장을 잡기에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 한인 사역자 협의회는 시급한 네자티 형제 아내 집 마련을 돕기로 결정을 했다. 현재 살고 있는 이즈밋 지역에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6만$ 정도이면 가능하다. 조국 교회가 순교자 가족을 섬겼으면 한다. 뒤에 남은 가족들, 자녀들을 위해 기도했으면 한다.  남겨진 가족들은 우리의 몫이 되었으면 한다. 1999년 8월17일 7,4도 대 지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터사모(터키를 사랑하는 모임)”통해 조국 교회 사랑이 나타나길 소원한다.
한국 사역자 협의회 드림
14) 조용성저, 발로 쓴 선교이야기, 예영커뮤니케이션, 2008년,p 219.
    “내러티브(Narrative)를 통한 무슬림 복음 접근”
 이슬람 사회에서 회자되는 얘기가 있다. 거짓 영이 식상하게 회자된다. 이슬람 문화 속에서 거짓 영은 민속 이슬람(Folk Islam)으로 수피즘(Sufism)이라고 한다. 민속 이슬람은 이상적인 이슬람과 맥은 같지만 신앙 접근 방법은 다르다. 민속 이슬람은 수피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이슬람 순결과 정화 운동으로 출범한다. 이상적 이슬람은 샤리아 법(원리주의)에 의해 출발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전 세계 이상적 이슬람은 30%이고 민속 이슬람이 70%이다. 전자는 수면 위의 이슬람이라면, 후자는 수면 밑의 이슬람이다. 전자가 빙산의 일각이라면 후자는 빙산이다.
무슬림 사회 속에서 복음 전파가 어려운 이유는 접근 방법이 잘못되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 선교사들이 무슬림 사회에 들어가 복음 전파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되어 있다. 전한다 해도 극소수 개종자들이다. 개종자 중 다시 무슬림 사회로 들어가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소수 개종자들 중 사회에서의 냉대와 핍박으로 이슬람 사회에서 영향력이 있는 삶을 살지 못한다. 이슬람 선교에 대해 수년간 고민 하던 중 “성경을 무슬림들에게 어떻게 들려줄까?”라는 세미나가 있었다. 그때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무슬림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 무슬림의 눈높이로 다가가야 한다. 이들이 아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대답은 간단했다. 무슬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접근 방식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성경을 이야기(Narrative)로 들려주라.
코란과 성경의 차이점이 있다면 코란은 시적(詩的)이고 성경은 이야기이다. 두 가지에 강조점이 있다. 전자는 시적 이야기를 후자는 내러티브식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 시적이라 함은 운율과 감정이 들어가야 한다. 이야기에는 시간과 공간이 들어가야 한다. 핵심에 운율과 감정을 넣어 하나님 말씀을 당시 사건적 시간과 공간에 집어넣어 이야기로 들려준다면 놀라운 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무슬림들에게 구약 성경 이야기는 거부 반응이 없다. 성경과 코란이 동일하다. 아브라함 이야기, 모세 이야기, 야곱 이야기, 요셉 이야기, 다윗 이야기, 다니엘 이야기 등은 솜에 물젖듯이 무슬림들이 여과 없이 받는다.
둘째. 코란 속에 예수님을 이야기로 들려주라.
코란 속에 예수님 공생애 행적 이야기가 여러 곳에 나온다. 공생애 사역 이야기, 병자를 고친 이야기, 기적을 행한 이야기가 나온다. 코란 속에 예수님을 시간과 공간에 넣어 이야기로 전해 보라. 전통적으로 무슬림은 예수님을 좋은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잘못된 선입견을 벗겨 좋은 선지자가 아닌 인류 구세주로서 예수님을 알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날 한 청년을 만났다. 그는 부유한 가정의 자녀였다. 청소년 시절에 정신 질환을 앓았다. 좋은 가정, 넉넉한 가정인데도 대학 진학을 못했다. 늘 보면 수심에 찬 얼굴이었고 평안과 기쁨이 없었다. 가끔씩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고  약을 복용하기도 했다. 그에게 내러티브식으로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중동 문화에서 유산(Heritage)은 중요하다. 유산에 앵글을 잡았다. 이 젊은이도 둘째 아들이고 아버지 유산을 기대하고 있었다. 문제에 대해 시간과 공간을 넣어 사건을 전개했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너에게 유산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생각해 보지 않았다.’ 결론 적용은 여운을 남친 채 이야기를 마쳤다.
이런 접근을 통해 무슬림 사회에 복음 전파가 이루어진다면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 날 것이다. 라마단 금식이면 복음과 율법에 대한 바울 사도의 말씀을 접근하면 무슬림들에게 효과적이다. 희생 제사인 고르반 명절이면 아브람이 이삭을 바치는 사건과 어린 양 희생 제사를 비교하여 설명한다면 복음 제시가 효과적이다.
셋째. 원 자료를 풍성하게 이야기하라.
성경은 평면으로 기록해 놓았다. 평면 내용을 입체화시켜야 한다. 성경은 픽션이 아니다. 논픽션이다. 논픽션은 재현이 필요하다. 재현하는데 두 가지가 필요하다. 높이와 깊이이다. 높이는 지성이 들어가야 한다. 지성은 이성에 호소하는 작업이다. 역사, 문화, 배경, 지리를 연구해야 한다. 넓이는 감정이다. 플롯(Plot)이다. 넓이에는 하나님과 저자의 의도가 함께 담겨져야 한다. 두 가지 작업이 조화를 이룰 때 원 자료가 모자이크가 되어 풍성하게 드러난다.
넷째. 불행한 과거를 이야기하지 마라.
무슬림들이 기독교에 대해 아픈 상처가 있다면 십자군 전쟁이다.‘십자군 전쟁’이라면 ‘기독교’, ‘기독교’하면 ‘십자군 전쟁’을 생각한다. 이런 아픈 상처에 기독교와 무슬림과의 관계가 있다. 이 상처를 화해하지 않고 복음의 접근이 불가능하다. 십자군 전쟁은 정의의 이름으로 예루살렘 탈환을 외쳤지만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다. 소아시아 무슬림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기독교가 잘못했다. 화해 작업이 필요하다.
대학원 공부 시절에 한 수업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슬람의 역사 첫 수업을 들어갔다. 첫 시간 수업에 교수는 나에게 종교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기독교라고 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 보라고 했다. 당황했다. 순간 지혜를 주셨다.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인들이 잘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독교의 전부가 아니라고 대답했다.
역사는 재조명이 필요하다. 조명함에는 반성도 포함되어 있다. 반성이 없는 역사는 발전이 없다. 무슬림들에게 불행한 과거를 이야기하지 마라. 기독교의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하라. 용서를 구하라.
다섯째. 교리적 논쟁을 피하라.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은 변질되었다.”라고 한다. 기독교인은 “변질이 되었다면 언제 되었느냐?” 질문하면 대답하지 못한다. 한 가지 기억하라. 무슬림들이 대답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지혜가 아니고 성경이 변질되지 않았다는 것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쟁은 논쟁을 낳고 다툼은 상처를 낳는다. 접근 방법이 잘못되었다. 쌍방 대화의 진전이 없다. 사역자들이 무슬림들을 향해 접근하는데 지혜가 요구된다. 논쟁을 피하고 복음을 이야기로 터치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야기는 이성을 터치하는 것이 아니고 감정을 터치한다. 이야기는 논쟁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의 문을 연다. 이야기는 다툼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복음의 위력이 일어난다. 이야기는 머리로 들려주는 것이 아니고 변화시킨다. 의지적인 논쟁보다 감정적인 이야기로 풀어나가라. 내 생각으로 무슬림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성경을 통해 주님을 만나게 하라. 주님이 역사하신다.


[응답] 다가오는 그리스도 왕국 -The Next Christendom-
         
(The coming of Global Church)과 이슬람 선교의 전략적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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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남

 

아랍권 선교사 since 1989
파송: GMS/ 중동선교회
가족: 김은숙, 정다훈,다윗,다희


[발제] 중앙아시아에서 NGO를 통한 이슬람 선교
         
선교사례 발표: 키르키즈의 친구들(Friends of Kyrgyzstan: F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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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희(1) /키르기즈스탄

 

이주희 선교사는 합동신학교와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신학과 선교학을 전공했다. 인터서브 선교사로 1995년 이후 키르키즈스탄에서 사역하고 있다. 터어키는 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의 맏형임을 자처하면서 막대한 자금과 선교사들을 동원하여 중앙아시아를 예전의 강력한 이슬람 국가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키르키즈에는 도시마다 기숙학교를 설립하여 키르키즈의 우수한 아이들을 뽑아 교육을 시키고 있고 여러 개의 대학을 세워서 이슬람교육을 시키고 있다. 또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 등 이슬람국가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중앙아시아를 지원하고 있다. 이슬람 사원을 건축하는 경비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이슬람 사원을 건축한 사람에게 격려금까지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I. 서론

중앙아시아는 전통적으로 강한 이슬람 국가였다. 그러나 러시아에 편입된 후 1917년 공산화혁명은 이곳의 이슬람 세력에 대한 공산주의의 핍박과 탄압으로 이어졌고 이슬람 세력은 상당부분 그 힘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중앙 아시아의 이슬람은 수니파 중에서도 수피즘이 강한 민속이슬람으로 공산주의 박해 아래서도 여전히 민간신앙으로 민중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들은 소련 공산주의가 붕괴된 이후에  헌법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들의 종교가 이슬람이라는 것을 공공연하게 천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키르키즈 인들은 “기독교는 러시아인의 종교이고 키르키즈인의 종교는 이슬람이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슬람신앙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일지라도 자신이 키르키즈족이기 때문에 무슬림이라는 것이다.  공산주의로 인하여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이 그 세력이 약화되었지만 이제는 민족주의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이슬람이 중앙아시아에서 그 세력을 더해가고 있다.  또한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아래 중앙아시아는 다시 급격하게 이슬람화되어가고 있는 중이다.2

수많은 젊은이들이 아랍국가에 가서 이슬람 교육을 받고 돌아오고 있으며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이슬람국가들은 중앙아시아 정부 관리들을 데려다가 어떻게 이슬람국가를 유지하고 기독교 선교를 억제하는지 교육시키고 있다. 학교와 대학들을 세워서 이슬람식으로 교육을 시키며, 마을마다 모스크를 짓도록 지원하여 키르키즈에만도 근래에3000개 이상의 이슬람 사원이 건축되었다.3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경계하여 탄압하지만 그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막기 위해 만든 기관과 법을 가지고 기독교 선교를 억압하며 교회를 탄압하고 있다. 공산주의의 70년 통치를 통해서 종교의 공백지대가 형성된 중앙아시아는 그야말로 영적인 전쟁의 격전지인 것이다. 중앙아시아는 이슬람국가로서는 4 비교적 개방적이지만 이슬람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어 여전히 이슬람권으로서 창의적 접근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러한 중앙아시아의 상황에서 서구 선교사들은 대부분 NGO를 통한 교육, 의료, 구호 개발사역을 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중앙아시아는 비교적 개방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선교사가 환영을 받지 못하는 창의적 접근지역이다. 이런 지역에서는 보통 선교사들이 비자받기가 어렵다. 그러나 NGO는 현지인이나 정부 입장에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NGO를 통해 비교적 쉽게 비자를 받고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기독교 선교를 위한 좋은 토양을 형성할 수 있다. 한편으로NGO는 평신도 전문인들과 단기 선교사들이 급증하면서 생기게 되는 어려움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편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특별히 중앙아아시아와 같은 창의적 접근지역에서 NGO를 통한 선교사역이 선교의 아주 중요한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중앙아시아의 상황 속에서 좀 더 효과적인 이슬람 선교를 위해 1997년 2월 키르키즈 정부에 한국사회복지 법인 Friends of Kyrgyzstan(FOK)라는 NGO를 등록하였다.

II. 키르키즈의 친구들 (Friends of Kyrgyzstan: FOK)

1. FOK의 비젼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영적, 육체적 필요를 공급함으로(나눔으로)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의 삶과 공동체를 변화시켜나간다.

2. FOK의 성경적 근거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 9:35

3. FOK의 정신
1)팀 사역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거룩하신 선교사역에 팀으로 사역하도록 부르심 받은 동역자들이다.
2)연합 정신
  우리는 타 단체와 사역자 및 사역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연합의 정신으로 사역한다.
3)현지중심
 우리는 현지인들과 현지 문화를 존중하여 언어 습득에 최선을 다하고 항상 섬기는 자세로 사역에 임한다.
4)현지교회 지원과 협력  우리는 선교의 열매가 어떤 형태로든 최종적으로 교회를 통하여 나타남을 믿으며, 따라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개척하고 자라게 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5)지도자 훈련  우리는 잠재적인 지도자를 찾아내어 훈련시키는 일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핵심적인 일임을 믿으며 이 일을 위해 헌신한다.
6)섬김의 리더쉽  우리는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기기를 원하며 어떤 사역을 하든지 적절한 시기에 현지 지도자에게 지도력을 위임한다.
7)긍휼의 정신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따라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한 사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4. 어떻게 이 비전을 실행할 것인가?

FOK는 우리를 부르신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사람들을 찾아 훈련을 시켜 제자를 만들며 현지교회와 함께 이 땅을 (총체적으로) 변화시켜 나간다. 여기서 핵심단어들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 헌신  
FOK 회원으로 이 땅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헌신된 사람들이며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협력하여 사역한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
우리는 우리의 뜻이나 우리의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고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제자 - 공동체에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 양성
키르키즈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 양성은 이 땅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핵심적인 부분이다.

*현지교회 - 신앙공동체  
하나님께서 세우신 현지교회(건물이 아닌 믿는 자들의 공동체)는 이 땅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핵심적인 공동체이며 우리는 현지교회와 함께 일하며 교회를 세우고 성장시키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 땅 - 하나님께서 우리에 맡겨주신 영역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뿐 아니라 모든 영역의 주님이심을 믿으며 직장, 가정, 교회 그리고 공동체를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영역에서 변화가 일어나도록 노력한다.  

*변화 - 우리가 바라는 열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사역을 통해서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과 공동체 안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기대한다.

5. FOK의 신앙고백 5

1)우리는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부르는 삼위 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성부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이 땅 위에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사 영원한 저주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셨음을 믿는다.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들을 대속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셨음을 믿는다. 성령 하나님은 죄를 회개케 하고 믿음을 갖게 하며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되게 하시며 다양한 은사와 사랑과 권능을 주셔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케 하시는 분임을 믿는다.
2) 우리는 모든 인간이 본성상 영적으로 하나님께 반응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에 불복종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믿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서는 성령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믿는다.
3)우리는 교회가 선교와 전도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임을 믿는다.  지역교회는 예배와 성례와 교제 그리고 전도와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 사랑과 정의를 나타냄을 믿는다.
4)우리는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며 믿음과 행위의 기준이 됨을 믿는다.
5)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시며 그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 성육신, 십자가의 죽으심, 무덤에서 부활하심과 승천 그리고 재림하실 것을 믿는다.

6. FOK의 구조

 

7. FOK 사역의 형태: 사역자 중심의 유기적인 지방자치제

FOK는 유기적인 지방자치제를 택하고 있다. FOK의 철학과 원칙에 동의하는 자는 누구든지 FOK와 함께 사역을 할 수 있다. FOK를 통해서 회원들은 비자를 얻고 행정적인 서비스와 법적인 보호를 받으며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서 목회적인 돌봄을 받는다. 회원들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FOK의 기존 사역에 참여할 수 있고 또는 다양한 사역을 개척하고 팀을 형성할 수 있다.  각 팀은 사역에 대한 운영과 재정을 책임진다.  또한 FOK를 통해서 현지 대학이나 신학교 등 다른 단체에서도 사역할 수 있다. 따라서 FOK는 사역자 중심의 유기적인 지방자치제를 택함으로 회원들이 보다 쉽게 팀사역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1) 장애아학교
1997년 2명의 교사를 7면의 아이들의 집으로 파견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었으며, 현재 9명의 선생님과 40명의 장애아들이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중증 장애이며 동시에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다. 소련 해체 후 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장애 아이들을 위한 학교이다.

2 )노인사역  
구청과 지역사회로부터 명단을 받아1주일에 한번씩 100명의 노인들에게 급식사역을 하고 있으며 현지 의사 2명을 고용해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3) 난민 구호사역  
의료 및 구호품 전달 등 난민을 위한 사역을 지속적으로 해 왔는데 현재는 정부의 요청으로 난민 자립을 위한 젖소분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4)구호사역  
한국의 국제 기아대책기구와 미국의 M0M(Messenger of Mercy)로부터 컨테이너를 받아 옷과 다양한 구호품을 나누어 주는 사역이다. 실제적인 필요가 있는 사역이지만 FOK는 이사역에 강조점을 두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주변 사회로부터 FOK가 좋은 평가를 받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5)직업기술강좌  
소련해체 후 발생한 대량실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 현지인들이 좀더 나은 직업을 가질 수있도록 돕기 위해서 시작됐다. 미용강좌, 컴퓨터강좌, 재봉강좌, 영어, 한국어 강좌 등을 통해서 지난 10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직업 교육을 시켜왔다. 특별히 미용강좌는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효과적으로 현지인을 도울 수 있는 유익한 사역이다.

6) 한국어교수 사역  
중앙 아시아에서는 한국에 대한 인기가 높고 각 대학마다 한국어교수에 대한 수요가 많다. 한국어 교수를 각 대학에 공급하며 캠퍼스 안에서 미래의 지도자들을 교육시키는 사역이다. 현재 키르키즈 국립대학과 국립 아라바예바 대학에 한국어교수를 파견하고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한국어과와 한국어 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7) 교회개척사역  
FOK는 회원들이 구호, 개발 사역 등 자기 전문적인 사역을 하면서 어떤 형태로든 교회개척이나 직접적인 선교사역에 참여하는 것을 권면하고 있다. 이는 성경에 나타난 원리를 적용하려는 시도인데, FOK사역의 성경적인 근거인 마 9:35에 따른 것이다. 주님은 이 땅에 계실 때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쳐 주셨다. 그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빵을 주셨고 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의 병을 고쳐 주셨다. 외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나인성 과부의 곁을 그냥 지나쳐 가시지 않고 다가 가셔서 위로하시고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또한 그 분은 동시에 온 성과 촌을 두루 다니시면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우셨다. 예수님께서는 소위 말하는NGO사역을 통한 구호 개발 사역을 하셨고, 동시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는 교회개척사역을 하신 것이다. FOK는 우리 예수님의 본을 따라 상황이 주어지는 한 NGO를 통한 구호 개발 사역과 더불어 직접적인 복음전도와 교회개척사역을 계속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것을 아래와 같이 도표로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구호개발사역(NGO)과 교회개척사역(공개사역)은 FOK사역의 양 날개이다. 따라서FOK안에서 비공개사역 중심으로 사역하는 사역자와 공개사역 중심으로 사역하는 사역자 그룹으로 나뉘어지며, 유사시 공개사역하는 사역자들이 철수하더라도 NGO를 중심으로 한 비공개 사역자 그룹의 사역자들은 남아서 계속 사역할 수 있다.

교회개척은 FOK이름으로 하지 않고 현지인 지도자를 중심으로 법적으로는 FOK와 별도로 이루어지게 된다.6  따라서 필자는 FOK초기부터 4명을 데리고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6개월 후 15명정도로 숫자가 증가하면서 첫예배를 드렸다. 이 때는 이미 현지인 집으로 장소를 옮기고 교회개척의 실질적인 일들은 여전히 선교사가 담당하였지만 공식적으로는 현지인이 대표가 되어 모임을 가졌다. 1년 6개월이 지나 60명정도로 모임이 커졌을 때 교회를 공개시켰고, 현지 지도자를 공식적으로 임명하고 지도력을 이양했다. 이렇게 두번째 세번째 교회를 개척하고 계속해서 지도력을 이양해 왔다. 교회개척을 하면서 초기부터 자치 자립을 강조했고 지도력을 이양하면서 교회가 교회를 개척할 것과 누구든지 교회개척하기를 원하는 선교사가 있으면 잠재적인 지도자를 공급할 것을 부탁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현지 교회들이 초기부터 자립의 길로 들어섰고 계속해서 교회가 교회를 개척하는 교회 배가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8) 교육사역과 비즈니스 선교  
최근 중앙아시아의 선교상황이 바뀌면서 FOK는 구호와 자원봉사 중심의 사역에서  비즈니스 개념을 도입한 사역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  2005년 이후 중앙아시아에서는 NGO를 통한 선교에 대한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소련 연방 국가들에 혁명이 일어나면서 러시아가 이러한 혁명의 배후세력으로 NGO를 지목하기 시작하면서 시작이 되었고, 우즈베키스탄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립 후 우즈베키스탄에서 NGO사역자들은 준외교관 대우를 받았지만 안디잔 사태 이후 거의 모든 NGO사역자들이 추방을 당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우즈백에서는 NGO를 통해서 비자를 받고 사역하는 것은 매우 어렵게 되었고 많은 선교사들이 NGO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통해서 사역을 시도하고 있다. 아직은 키르키즈스탄이나 카작스탄은 개방적이지만 우즈백이나 다른 이슬람 국가들의 영향을 받아 초기보다는 선교 상황이 많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동안 NGO를 통한 선교에 집중해 왔던 중앙아시아 선교는 다른 선교의 방법을 찾고 있고 비즈니스를 통한 선교는 또 하나의 대안으로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FOK는 이러한 선교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면서 한편으로는 NGO사역을 지속하면서 비즈니스개념을 도입한 사역들을 시작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역이 유치원과 기독교 학교 사역이다. 2005년에 유치원 “꿈”을 시작하고 2006년부터 기독교 학교 “아리엘”을 현지 교사들과 함께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유치원과 학교는 구호차원의 학교가 아니라 비즈니스 개념을 도입한 자립형 사립학교 이다. 좋은 시설과 훌륭한 교사, 양질의 교육을 통해 학교의 수준을 높이고 학교 운영을 위한 적절한 등록금으로 빠른 시일 내에 자립할 수 있는 학교로 키워 나갈 예정이다. 현재 유치원부터 7학년까지 27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으며 60여명의 교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아직은 재정적으로 완전한 자립단계 들어가지 않았지만 바라기는 수년내에 현지인에 의해서 현지 재정으로 운영이 되는 학교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또한 소액 금융회사인 “졸도쉬”에 주요 투자자로서 참여하여 기독교인들이 소규모 사업을 시작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이 곳에서 나오는 이익을 통해 FOK의 구호 및교육사역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 FOK는 NGO를 통한 구호개발 사역과 더불어 비즈니스를 통한  자립형 선교 사역 7을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9) 연합사역
FOK는 FOK에서 직접 운영하는 사역이 아닐지라도 연합을 위해서 정부나 현지기관에 사역자를 보내거나 연합사역에 참여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연합신학교인데, 필자는 신학교 설립에서부터 참여하여 현재도 사역자를 교수요원으로 보내어 사역을 후원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8

10) FOK 사역자
 FOK에는 그동안 여러 단체(인터서브, OM, 아가페 선교회, IVF, FHI, 대한 예수교 장로회 선교부, GMP, JAICA등)에서 여러 국적9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여러가지 다양한 사역을 해 왔다. 대부분의 한국사역자들이 함께 팀으로 사역해본 경험이 많지 않아 쉽지만은 않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함께 팀으로 사역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서 우리가 배운 것은 함께 팀으로 사역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 팀을 축복하셨고 사역의 아름다운 열매들을 허락하셨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한국선교사들이 팀으로 사역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FOK에는 현재 29명의 선교사가 다양한 사역을 통해서 함께 사역하고 있다.

III. 결론

NGO를 통한 선교사역은 아직도 중앙아시아와 같은 창의적인 접근지역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는 선교의 방법이며, 현대선교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어려움들을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전략이다. FOK는 NGO를 통해서 선교에 헌신된 평신도들을 전문인 선교사로 발굴하여 사역의 장을 제시하고 목회자 출신의 전통적인 선교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팀으로 사역하는 새로운 형태의 선교 방향을 추구하고 있으며 창의적 접근지역에서 NGO사역과 교회개척사역을 통합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첫째는 힘들고 어려운 부분들도 많았고 부끄러운 부분들도너무 많다. 멋모르고 시작한 팀 사역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서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은 때도 있었지만, 우리의 수 많은 실수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어찌하든지 팀으로 사역하려고 애쓴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또 기뻐하셔서 부어주신 은혜가 수 없이 많기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둘째로 이슬람권이었지만NGO사역과 교회개척사역을 동시에 할 수 있었던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사역의 형태는 소련독립 후 중앙아시아에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문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이 두가지 사역을 함께 해 나갈 수 있을지 지혜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시간은 사회봉사와 복음전도를 함께 병행해 나가는 선교가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FOK는 어떤형태로든지 이러한 사역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노력을 할 것이다.

세째는 FOK는 그동안 선교사는 현지인들이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개발하고 훈련시키며 도와주고 섬기는 자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실천해보려고 노력 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 빠른 시간에 현지 지도자들에게 지도력 위임을 하게 되었고 부작용도 있었다. 때로는 후임자가 잘 교회를 이끌어 기쁘고 대견하기도 했지만 지도력 이양이후 어려움을 겪는 교회들을 보면서 많은 아픔과 우리가 지도력 이양을 얼마나 쉽고 간단하게 생각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OK는 주인이 되기보다는 현지인들을 주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돕고 섬기는 역할을 해나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넷째로 선교지의 급변하는 정세로 말미암아 우리는 좀더 선교지 상황에 민감하게 대처하며 새로운 동향을 파악해 적절하게 선교 방법을 바꾸어 나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으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고 FOK는 자기 자신을 늘 돌아보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다.

다섯째 선교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은 시간이었다. 우리 인간은 선교라는 위대한 과업앞에서 정말 미약한 존재이며 결국 선교는 선교의 주인공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가신다. 그러기에 선교지에서 우리가 원하는 사역을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이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서 애를 쓰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야할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어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 같이 부족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그 위대한 선교 역사에 동역자를 불러주시고 우리를 통해서 그일을 하신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동안 많이 부족하였지만 하나님께서 키르키즈스탄에서 FOK를 사용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더욱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교를 이루기 위해서 애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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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이주희 선교사는 합동신학교와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신학과 선교학을 전공했다. 인터서브 선교사로 1995년 이후 키르키즈스탄에서 사역하고 있다.
2. 터어키는 중앙아시아 투르크 민족의 맏형임을 자처하면서 막대한 자금과 선교사들을 동원하여 중앙아시아를 예전의 강력한 이슬람 국가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키르키즈에는 도시마다 기숙학교를 설립하여 키르키즈의 우수한 아이들을 뽑아 교육을 시키고 있고 여러 개의 대학을 세워서 이슬람교육을 시키고 있다. 또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 등 이슬람국가들이 여러가지 형태로 중앙아시아를 지원하고 있다.
3. 이슬람 사원을 건축하는 경비를 지원할 뿐만 아니라 이슬람 사원을 건축한 사람에게 격려금까지 지불하고 있다고 한다.
4.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은 공식적으로는 이슬람 국가가 아니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공화국을 표방하는 세속국가이다. 무신론 교육을 받은 정치지도자들조차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통치하기 이슬람을 통해서 민족의 정체성을 찾으며 이슬람에 편향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5. 이 신앙고백은 로잔언약의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작성한 것이다.
6. NGO사역의 순수성을 위해서 교회개척사역을 포함한 영적인 사역은 FOK를 통해서 비자를 받지 않으며 법적으로 연관성을 갖지 않는다. 공개사역을 하는 사역자가 비자가 필요한 경우는 FOK가 개척한 교회를 통해서, 또한 연합신학교와 같은 종교기관을 통해서 비자를 받고 법적인 신분을 유지한다.
7. BAM(Business as a mission)은 최근 선교계의 핫이슈로 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창의적 접근지역에서 점점 비즈니스가 선교를 위한 방법으로 등장할 것이다.
8. 키르키즈 연합신학교는 키르키즈에서 한국사역자들이 연합으로 세우고 운영하는 좋은 사례이다. 1996년 당시 키르키즈에는 이미 네개의 신학교가 있었지만 새로운 신학교를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었다. 만약에 그러한 움직임이 그대로 허용이 된다면 짧은 선교역사와 미약한 현지 교회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신학교가 난립하여 앞으로 키르키즈교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상황이었다. 이에 몇몇 뜻을 같이하는 선교사들이 모여서 신학교의 난립을 막고 키르키즈 교회에 건전한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1997년 9월 키르키즈 연합신학교를 설립하였다. 처음에는 100% 한국선교사들에 의해서 시작된 연합신학교는 몇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모든 교파가 참여할 수 있도록 초교파적인 신학교를 만든다는 것이었고, 둘째는 이미 있는 기존의 신학교들은 인정을 하지만 앞으로는 신학교 설립을 자제하고 모든 한국선교사들은 연합신학교의 사역에 동참한다는 것과 셋째로는 2010년에 현지인에게 지도력을 이양하며 이를 위해서 현지인 교회들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넷째로는 한국 사역자들 뿐만 아니라 서구 사역자들과 현지교회의 지도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진정한 연합신학교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현재 연합신학교는 키르키즈스탄에서는 가장 좋은 신학교 중의 하나이며 신학교의 난립을 막았고 선교지에서 한국사역자들의 연합사역으로서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또한 한국인들끼리만 사역하지 않고 서구 사역자, 그리고 현지 교회지도자들과 함께 신학교를 운영하면서 선교현장에서 한국선교사역의 국제화를 위한 좋은 사례가 되기도 하였다. 2002년 필자가 학장으로 근무하면서 교무처장에는 뉴질랜드 에드워드 샌즈박사가 학생처장에는 스코틀랜드 이안커비 박사를 임명하였고 학장 혼자서 학교를 운영하지 않고 세명이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신학교 운영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100% 한국인이었던 이사진에 4명의 서구 선교사를 초청하였다. 교수진도1997년 출범 당시 100% 한국선교사들이었지만 2003년에는 한국교수진이 31%로 줄고 서양교수진이 50%, 현지교수진이 15%, 인도네시아등 타지역 선교사들이 4%로 나타났다. 2008년 5월 현재 현재 연합신학교 교수진은 현지인이 46%, 서구 선교가 38% 한국선교사가 12%, 그외기타(말레이시아)가 4%이다. 2004년부터 뉴질랜드 출신 에드워드 샌즈박사가 학장이 되어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사장은 한국선교사인 김옥렬 박사이다. 신학교 사역을 할 경우 한국선교사들은 교회개척 등 다른일에 매우 바쁘지만 서구선교사들은 신학교사역에 전념하는 경우가 많아 서구선교사들의 참여가 신학교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한국선교사들의 열정과 서구선교사들의 합리성이 결합이 되어 아주 좋은 본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가치관과 문화가 다른 선교사들이 함께 사역하면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어려움도 많았지만 키르키즈 연합신학교는 한국선교사들도 연합사역을 할 수 있으며 서구선교사들과 함께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역이라고 할 수 있다.
9. FOK에는 그동안 미국, 영국, 스코틀랜드, 캐나다, 네덜란드, 뉴질랜드, 호주, 일본등 여러나라 사람들이 참여했지만 주로 한국 사람들이다.


[응답] 키르기즈 선교사례 (실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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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서남아시아 선교 - 비판적 상황화와 자생 모델을 통한 이슬람 선교 가능성과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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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득수 / 방글라데시

 

고려대학교 영문과 졸, 고려 영어 영어교육대학원 중퇴, 총신 신대원 졸
OM선교사로 인도와 네팔지역에서 3년간 사역, IVF Korea 선교 담당 간사, KDAB 한국 본부 대표 간사, 1994년 방글라데시 선교사로 부임
Good Neighbours Internatioanl Bangladesh 지부장 역임, 국제기아대책본부 사업 본부장 역임 , 현 GMS 방글라데시 이슬람 선교사 ry Song


이제 기독교 선교앞에 남아 있는 블록은 이슬람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이슬람권도 이제 서서히 복음에 문을 열고 있다. 이슬람권에서도 복음이 전파되어가는 이유는 이슬람 내부의 모순과 이슬람권의 선교사들의 변화된 접근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개종자들 스스로가 이슬람 내부에 핍박가운데에서도 남아 있으려는 자생모델을 만들어가고 있어서 이슬람 선교의 가능성은 더 커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선교지에 새로운 변화와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1. 이슬람의 신앙 기초 그리고 그 취약성

이슬람교는 한마디로 율법에 기초한 종교이다. 5개의 기둥 즉 샤하다(신앙고백), 나마즈(하루에 다섯 번 기도), 라마단(일년에 한달 금식), 하지(메카 성지 순례), 자캇(가난한 자외 영적사역을 위한 헌금)을 제대로 지키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율법종교이다. 그러나 로마서에서 바울도 지적했듯이 율법으로 구원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슬람교인도 전통적인 그들의 5대 기둥을 제대로 지켜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진정한 모슬렘은 많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은 구원의 확신을 갖을 수 없다. 게다가 이 5 기둥 중에 가난한 자들은 참여할 수 없는 2개의 항목이 있는 데 바로 성지순례와 헌금이다. 이슬람 지도자들은 그들에게는 이 두 항목이 제외된다고 말한다. 그러나이런 공제는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적용시킬 수 없는 오류를 보여주고 있는 것 뿐이다. 특별히 성지순례는 영원하지 않는 이 땅에 거룩한 성지를 만들어놓았다는 데에 심각한 취약성이 있다. 많은 모슬렘들이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나름대로의 은혜를 받지만 한 장소에 너무나 많은 모슬렘들이 모여들어서 압사사고로 사망과 부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순례자로 하여금 상실감을 낳게 한다.

그들의 경전인 코란이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되면서 내부 모순이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그동안 아랍어로만 읽게 했던 코란 경전이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된 이후  코란을 읽은  모슬렘들은 지도자들의 평상시의 가르침이 코란가 충돌되는 부분이 있음을 알아가고 있다. 게다가 최후 선지자인 마호메드(샷)는 코란에서 단순한 선지자로 묘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디스(전통문서)를 통해서 그를 선지자 이상의 존재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과 내부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코란 내용에도에도 서로 상반되는 구절이 여러 군데 상존하고 있어서 많은 혼란을 야기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뿐 아니라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을 상당히 인용한 코란은 내부적으로도 복음을 소개할 수 있을 정도의 구절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심지어 코란을 제대로 읽은 모슬렘중에서 예수님에 대해 더 알기 위해 노력하다가 구원을 얻은 이까지 있는 상태이다

2. 최근의 이슬람권에서 벌어지는 추수의 상황들

최근 이슬람 권에서 추수의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북부 아프리카와 중앙아시아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등이 추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곳이다. 아직은 이슬람권의 변방권이기는 하지만 추수시기를 알려주는 현상 중 주목할 말한 내용은 이슬람 부락이 집단적으로 그들 스스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방글라데시 남부지역 3개 부락이 NM으로 집단 개종함. 이디오피아 이슬람 부락도 집단으로 기독교로 개종함등). 물론 이런 집단적인 개종이 일어나고 있거나 추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이슬람권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고등이슬람이라기 보다는 이슬람 일상생활과 토속주의 색깔을 강하게 띄고 있는 하등이슬람인 지역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개종자들의 60%가 코란에 대한 사전지식이 깊이 있는 모슬렘이었다는 조사는 정통 이슬람교인들의 회심도 얼마든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현상은 개종과 회심이 외국인 선교사의 손에 이루어지기 보다는 이제는 개종한 이들에 의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즉 이슬람 선교의 움직임이 벌써 개종한 이들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슬람 선교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

3. 선교사들의 접근 방법의 변화(전략적인 측면의 변화)

진화론적 종교 발전관을 갖고 있는 모슬렘이 그동안 자기종교보다 하등종교로 여기는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그들이 증오하는 서구의 문화를 입고 있는 선교사의 전통적인 전도방법과 예배방식을 수용할 리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러 일부 서양선교사들이 그동안의 전통적인 전도방법에는 서양문화가 많이 섞여 있다는 반성을 하면서 이슬람내에 하나님이 심어주신 일반 은총적인 측면을 이용한 상황화적인 접근방식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자 많은 모슬렘인들은 더욱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로 1990년에 방글라데시의 SIM에서 개발한 상황화 전도방법과 1996년 미국남침례선교부에서 개발한 낙타전도법이 주요한 전략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많은 부분을 수용한 이슬람이기에 그들의 경전중 예수님이 선지자 이상임을 증거해줄 만한 코란 구절(수라 알임란 42-55)과 그들의 예배방식과 그들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이슬람의 닫혀진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특별히 방글라데시는 힌두교용어로 번역된 성경책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해소하기 위해서 그들의 종교용어와 그들의 표현방법을 이용하고 외장을 이슬람형식을 사용함으로써 경전에 대한 모슬렘의 긍정적인 반응을 유도해내는데 성공하였다.

이런 상황화시도는 복음을 전달자 중심에서 청취자 중심으로 변경시키는 작업이었고 두 번째로 상황화는 현지인들로 하여금 정당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기독교의 복음이 상황화되지 않았을 때 기독교는 단지 외국의 종교로만 남게 되어 현지인들로 하여금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당한 상황화는 현지인들로 하여금 회심이전에 함께 살았던 사람들과 살아야 하는 책임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신앙의 공동체속에서 새로운 구성원들과 함께 살아야 할 책임을 느끼게 한다. 세 번째로 상황화는 서구 교회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해를 확대하는 것이다. 상황화 신학들이 교회전통을 이루며 각 문화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신학화된 이후 다른 교회전통과 교류하면서 진정한 공회성을 갖는 다고 본다.

이렇게 기독교계에서 그들의 눈높이 수준으로 낮아져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방향전환을 시도하자 그들 내부의 모순과 혼란에 빠져있는 모슬렘들의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90년도 이전에는 기독교로 개종하면 모슬렘 이름도 바꾸고 힌두교개종자들이 대부분이 전통교회에 가입해서 자신들의 모슬렘사회와는 완전히 결별하게 된 상황이었지만 상황화 전략이 소개된 이후 개종자들은 이슬람 사회안에 남아있으면서 예수를 따르는 추종자(Isa-ee:이샤이)라는 호칭으로 핍박을 인내로 참아가면서 친지라인으로 전도하여 지금은 그 수가 수만명에 이르고 있다. 특히 미국 남침례교 선교부까지 상황화전략을 신학적, 실척적으로 잘 정리하여 전도운동이 일어날 수 있게 만든 낙타 전도법은 이곳에서만 수만명의 새로운 개종자들을 만들어내게 하였다.

이처럼 선교사의 접근변화는 열매를 낳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이제는 이샤이 자마트라는 단체는 정부에 하나의 종교단체로 2000년도에 이슬람 근본주의가 장악하고 있는 종교성에 등록되었고 지난달에는 지방에 이샤이 에바돗 카나(개종자를 위한 교회로 개종자들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라는 의미)라는 이름으로 개종자의 교회를 공공연하게 이슬람 지역사회안에 설립하기도 하였다.

이제 개종자 스스로 전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양육하는 일도 시작되었다. 그들의 사역의 특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데 우리는 그들에게서 이슬람 선교에 대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1) 상황화를 통해서 이슬람 사회안의 끊임없는 접촉점 유지한다(친지라인을 통해 전도).
  2) 코란을 통한 사전 전도법(Pre-evangelism)을 사용한다.
  3) 안전상 별도의 건축이 필요하지 않는 가정교회의 셀모임 형태로 교회를 개척하고 유지한다.
  4) 대부분의 가정교회의 리더는 자비량으로 자신의 직업을 갖고 사역을 한다.
  5) 예배시 이슬람식 기도와 이슬람용어로 번역된 성경과 예배용어의 사용으로 처음 방문하는 모슬렘추구자로 하여금  이질감을 느끼지 않게 한다.

4. 그러나 아직도 남아있는 과제

이렇게 개종을 많이 했다고 해서 부흥이 일어날 정도는 아니다. 아직도 곳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개종 이후 훈련프로그램의 빈약화로 인해서 많은 개종자들이 혼합주의상태나 영적 아이들 상태로 남아 있거나 아니면 주변의 이슬람 지도자들의 회유와 강권으로 다시 본 이슬람으로 돌아가는 백슬라이딩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또한 여전히 개종이후 급여를 포함한 물질적인 혜택을 개종자들에게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개종 동기를 매우 혼탁하게 하는 현상도 일어나기도 한다. 심지어 이슬람 개종사역을 강하게 전개하던 한 단체가(모시호 자마트) 서양선교단체에서 후원하는 기금을 오용하자 리더들 사이 갈등이 일어나서 문을 닫는 사례까지 낳게 되었다.

게다가 개종자들 사이에 상황화의 정도에 따라서 서로 분열되는 현상도 빚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개종이후의 훈련프로그램이 체계화가 되지 않아서 성령의 강한 역사와 개종이후의 배가운동으로까지 잘 일어나고 있지 않고 있다.

바로 이런 과제가 이곳에서 선교사의 중요한 몫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개종자들과 깊이 대화를 나누어보고 그들의 신앙생활을 관찰해본 결과 그들은 다음과 같은 도움이 필요로 함을 파악하게 되었다.

   1) 개종이후 이슬람의 잘못된 영적 가르침을 세척하고 제자로서 살면서 사역할 수 있는 체계적인 영적훈련 :별도의 신앙훈련 교재를 제작중이며 전도방법도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잘 선정해서 좀더 체계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으로 발전시켜서 가정교회 전체 멤버들이 참여하는 그룹전도 방법을 보급시킨다.
   2) 개종자 그룹을 잘 운영할 수 있는 리더쉽 개발과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조직화 :지방은 5개의 자마트를 하나로 묶어서 한명의 리더를 두어 그 지역을 목양하게 하고 5개의 지역이 구성되면 그들이 추천하는 한명의 풀타임 전임사역자를 두는 5 X 5 조직화를 하고 있다. 이 조직은 현재 방글라데시 3군데에 조직이 완료 되었고 처음부터 그들이 리더쉽을 쥐고 운영하고 있다.
   3) 이슬람 사회의 핍박을 견딜 수 있는 자립적 자생적으로 운영되고 배가하는 공동체 시스템 :그들이 현재 벌이고 있는 작은 규모의 사업을 더욱 성경적으로 운영하게 하고  개종자들에게 그 사업을 전수하여 사업확장을 통한 자립적이고 자생적인 공동체를 갖도록 유도하고 동시에 그 사업을 통한 전도라인 확대한다. 그리고 사업의 이윤을 가정교회에 헌금을 하도록 하여 처음부터 자립적인 구도를 갖추어 선교사에게 의존하지  않게 한다.
   4) 이슬람 사회안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법적인 안정망 장치와 종교재판시에 변론할 수 있는 능력 개발 : 그들의 활동을 자국내 법테두리안에 합법화 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 그 절차를 밟도록 한다.(지금 방글라데시는 Trust라는 재단으로 등록시키고 있다) 그리고 지역 재판과 핍박을 이긴 경험 있는 리더들이 사례와 모아서 새 개종자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5) 이슬람 문화 중에서 성경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그들만의 예배 공동체와 문화 개발 성경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이슬람 예배방식중 그들이 스스로 수용가능하다고 보는 방식을 체택하여 예배시에 적용하여 그들 나름대로의 문화에 어울리는 예배와 문화를 개발하게 하고 이슬람 2대 축제인 라마단과 코르바니 이드기간중에 성경적으로 축하 할수있는 그들만의 방법을 개발하여 참여하도록 한다. 예) 라마단(금식월) 기간중에는 이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역라마단 금식기도운동
    6) 그동안 전도대상자중에서 제외된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전도전략과 양육 프로그램 : 그동안 서양선교부에서는 결정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여성이나 어린이들은 전도나 훈련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개종형제들의 결혼대상자 개종자 자녀들의 정체 성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성을 향한 전도와 그들만을 위한 별도의 가정교회 개척과 여성리더쉽 개발을 시작했고 동시에 아동들을 위한 전도방법과 Open class(주일학교형태)의 아동 학교를 세우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 이슬람 선교에 헌신한 한국선교사들로 팀을 이루어 현지 개종자 그룹과 함께 조심스럽게 진행시켜 나가고 있다. 물론 이런 일은 방글라데시라는 특수한 상황이 존재하기에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슬람 선교나라마다 서로 다른 상황이기에 바로 적용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속에 담겨져 있는 선교적원리는 적용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이슬람 권은 복음에 대해서 열어져 가고 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변화되어 접근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접근을 받아 들일 것이다. 특히 한국선교사들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면서 선교대상자의 문화와 사전이해를 연구해가면서 새로운 접근 선교전략을 개발하기를 기대해본다.

* 아래 사례는 우리 팀이 지난 2년동안 지방의 한 자생 개종자 그룹을 섬기면서 성장하게 된 경우이다. 이들은 지금도 핍박과 내부 갈등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질적 수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안전을 위해서 본래 인명과 지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 사례 : 서쪽 자생 개종 그룹의 핍박과 부흥 그리고 한계(자립 자생선교의 모델사레: 가명사용)

1997년 남침례교 선교부에서 낙타전도법으로 전도받고 세미나에 참석해서 주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은 몬돌형제는 자신의 개종사실이 알려지자 자기 지방에서 가장 큰 이슬람사원의 의장으로 섬기고 있는 아버지와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그는 당시에 같이 개종한 한 모슬렘 자매와 결혼한 이후 근처의 시골에 들어가서 자신이 그동안 대학에서 배운 실력을 토대로 학원을 시작했다. 그렇게 접촉되는 모슬렘 청년들에게 전도하여 30명의 열매를 얻었다. 그러나 자신도 제대로 성경훈련도 받지 못한 터인지라 그는 다카에 와서 자신과 자신의 그룹을 훈련시켜주고 인도해줄 선교사들을 찾아나셨다. 그러나 자기에게 전도한 남침례교 선교부와 다른 서양선교사로부터도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몬돌은 다카에 사는 개종자 친구의 소개로 한 한국선교사를 만나게 되었다. 마침 자립 자생 개종자 그룹을 찾고 있었던 그는 이 그룹을 돕기로 결정하고 이 그룹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그들을 양육하고 배가시키기 위한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나갔다. 수차례에 걸친 회의와 훈련을 거치면서 몬돌과 다른 지도자들은 한국선교사의 가르침과 인도를 잘 수용했고 바로 적용해나갔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내부적인 심각한 부작용과 이슬람 지역사회의 외부적인 핍박과 반대를 극복해나가야 했다. 심지어 개종했다는 이유로 근처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재판받기까지 했던 몬돌은 외국인인 한국선교사가 돈을 주어서 이 사건을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기도로 끝까지 주님의 도움만을 바라보자는 데에 동의하여 결국 사건자체가 취하되는 응답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개종자들이 운영하고 있는 학원, 옷제작및 판매, 벼 종자 판매, 이동판매등의 사업을 다른 개종자들에게까지 확산시키면서 이윤이 늘어나는 자립적인 경험을 하기 시작했고 이 사업을 통해서 접촉하게 되는 이들에게 전도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선교사가 그동안 수차례 걸쳐서 제공한 가정교회 지도자 양성훈련을 토대로 해서 그들 나름대로의 새신자 훈련등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5개의 자마트마다 한명의 리더를 선정해서 지역대표로 선정했고 풀타임 사역자까지 선정을 마무리 하였다. 주변 마을에 전도를 계속한 그들은 개종자의 수가 300명에 까지 이르러 5명 지역대표를 선정하기에 이르렸다. 그리고 그들은 3명의 공동대표들이 이 전체 사역을 주도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사역을 합법화시키기 위해서 지방도시 관청에 Trust를 신청해서 허가를 받아 내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선교사의 일부 도움과 그들 스스로의 헌금으로 최초로 훈련원 겸 중앙 가정교회를 임대하여 건립하게 되었다. 이 훈련원은 5년내로 그들 스스로의 헌금으로 자립운영하게 되고 동시에 그들이 지명한 풀타임 사역자가 1-2년내로 훈련을 마치고 그들을 영적으로 돌보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이들에게 여전히 지역이슬람 사회에서 핍박을 가하고 있지만 이제 이들은 자신이 만든 모델을 갖고 근처의 다른 주에 까지 진출하였다.


[응답] 상황화 (서남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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